728x90
반응형

https://youtu.be/Bc0i6G3g1fY?si=b2JDHVfPbMie3FNm

안녕하세요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조선 해군을 이끄는 동안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무적의 조선수군이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바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패하여 2만여명의 수군과 거북선과 판옥선 대부분을 잃으면서 남해 제헤권을 왜군에 빼앗기는 참극이 벌어진 것이 칠천량 해전입니다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된 후 일본은 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하는 정유재란을 일으켰는데 일본의 이간책과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 장군이 해임된 후 새롭게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원하던 자리를 차지하고는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술과 여색으로 시간만 허비하다 권율 도원수에게 곤장을 맞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선조도 원균의 이순신에 대한 모함을 들어왔기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해 주고 원균이 싸울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러 차례 재촉하고 독촉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인사권자로 원균이 이순민에 못 미치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만 자신의 인사에 면피라도 하려고 원균에게 바라로 나가 왜놈을 쳐부수라 압박을 한 것입니다

 

원균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할 때는 온갖 참소와 거짓말로 공격했지만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자리에 원균을 선조가 임명하자 왜군과 싸워 이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껴 차일피 싸움을 미루고 군영에 머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선조도 자신의 인사에 반발하는 조정 대소실료들의 눈초리와 분위기에 원균이 바다로 나가 단 한차례라도 왜놈을 무찔러 주기를 바랬고 이런 독촉이 결국 원균의 친천량해전 패배의 단초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없는 조선수군에 대해 왜놈들은 공포감이 사라져 있었고 원균이 이끄는 삼도수군을 상대로 치밀하게 복수전을 준비해 왔기에 칠천량 해전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해전이었다는 사실은 해군사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왜군은 단 한차례라도 조선수군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고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중책에 버거워하며 왜군과의 싸움을 피하다 억지로 등떠밀려 나온 해전이라 제대로된 전략도 대비도 안되어 있던 해전이었습니다

 

왜놈들의 기습에 황급히 칠천량까지 도망간 원균의 삼도수군은 좁은 칠천량에 갇혀 왜놈의 공격을 받게 되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 등 이순신장군과 손발을 맞쳐온 수군 장수들이 대부분 전사하는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원균은 배를 버리고 거제도에 올라 왜놈의 추적을 피해 이리 저리 도망다니다 결국 왜놈들에 의해 목이 베이게 되는데 왜놈들으 전쟁방식에 따라 원균의 목은 소금에 저려져 왜장들에게 보여졌을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발발이후 단 한차례도 진적 없던 조선수군이 칠천량 해전이라는 단 한 차례의 패전으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12척 판옥선을 이끌고 무단으로 전선을 이탈해 한산도 삼도수군진영으로 철수해 수군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왜놈들이 칠천량 해전에서승전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한산도 삼도수군통제부를 공격하여 약탈한 것입니다

 

뒤늦게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순군통제사에 임명하지만 전선이 12척 밖에 없다는 소식에 육지에 올라 권율 도원수 휘하에 들어가라 하지만 이순신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장계를 올려 제해권을 회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 다짐은 명량대첩으로 현실화시키게 됩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의 몰락을 목도한 왜놈들은 이순신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 복귀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 조선수군의 숨통을 끓어놓겠다는 심산으로 130여척의 군선을 이끌고 명량해협으로 조선수군을 공격해 왔지만 이순신 장군은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르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순신 장군의 3대첩 중 으뜸으로 친다면 역시나 명량대첩으로 완전히 몰락한 수군을 단 시일에 정비해 왜놈 대군을 맞아 대승을 거둬 다시 무적의 조선수군이 부활했음을 왜놈들에게 보여준 승리로 러인전쟁 때 대한해협 해전의 승장인 도고 헤이하치로 마져 영군에 넬슨에 자신을 비견할 순 있을 지라도 이순신 장군에게는 못 미친다고 겸손할만큼 일본인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인 해신이 되어 있는 것이 이순신 장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조는 전후 공훈을 내리는 데 있어 원균을 이순신과 동급으로 추서하는데 이는 선조의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원균을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선조의 비열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전국이 초토화되고 조선의 지배층들마져 조선왕실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비난할 때였으니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할 시기였기도 했습니다

 

칠천량 해전일을 맞아 패장인 원균이 그렇게도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를 모함하고 참언했던 모습이 오늘날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 쓴 웃음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앞으로를 잘 살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소중해 지는 때입니다

https://youtu.be/5mHxIx5aVVY?si=jqXurpZw-INV0T7L

https://youtube.com/shorts/uoU9iX0JnGQ?si=w17MH64IADAzKWii

https://youtu.be/4jeLldYggpI?si=KAT7RrbrQSPv9Vu-

 

728x90
반응형